Seoul , 2003
 
박홍천 사진전… 1만개의 차•가로수•상점 렌즈에 담아
정재연, 2003
 

사진은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위해 촬영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사진작가 박홍천씨는 관객이 구체적인 이미지를 보지 못하도록 했다고 말한다.

‘갤러리 인’ 전시장. 가로 4m, 세로 3m(혹은 그 반대)에 달하는 초대형 작품이 3점 등장한다. 얼핏 봐서는 무슨 형상을 담은 것인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작품은 필름 사이즈(가로 4cm 세로 3cm) 컷 1만개를 연결해 붙인 대형 콜라주다. 압도적 스케일의 작품 3점은 각각 1만대의 자동차, 1만 그루의 가로수, 1만개의 상점 입구를 담고 있다.

작가는 “서울이라는 에너지 덩어리가 곧 작품”이라고 말한다.“ 그는 그 에너지를 포착하기 위해 엄청난 노동을 해야 했다. 박씨는 도시 속 개인을 상징하는 자동차, 가로수, 가게 등을 촬영하리라 맘 먹은 뒤 카메라를 둘러 메고 서울 곳곳을 누볐다. 몇 달 동안 서울 서대문, 장안동, 잠실 등 강남•북 곳곳의 육교 위에 올라가 자동차를 촬영하다가 카파라치로 오인 받기도 했다. 하루 서른 롤씩 자동차를 찍었고 일일이 현상, 인화해 손으로 잘랐다. 사진 1만장을 패널에 붙이는 작업만 보름이 걸렸다.

1만대의 자동차는 대도시의 익명성을 상징하는 듯하다.
돋보기를 들이대면 각기 다른 자동차번호가 마치 주민등록번호처럼 개개인을 구분해주지만 거대한 작품 앞에서는 어차피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도 힘들고 누가 누군지 중요하지도 않다. 그저 개미처럼 서로 얽히고 설켜 꼼지락대는 현대인의 일상일 뿐이다.

 

 

전시장 다른 벽에 등장하는 ‘APT’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광활한 우주에 깜박이는 별빛을 촬영했나 싶어 다가가 보니 사진 속 점들은 멀리서 찍은 아파트 불빛이다. 총 1225컷으로 이루어진 사진을 제작하기 위해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란 단지는 다 돌며 1225개 동을 촬영했다. 아파트 동•호수로 각자 ‘내 집은 여기’라고 주장한다지만 결국 인간 존재란 우주 속 티끌처럼 덧없다는 것을 암시하듯 화면 전체에 막막함이 넘쳐 흐르는 작품이다.

작가가 장시간 노출로 만들어 낸 이미지도 등장한다. 놀이동산, 동물원 등 보통 인파로 북적이는 공간에서 카메라 셔터를 30분 정도 열어놓고 촬영하면 움직이는 사람의 형태는 사라진 채 고정된 조형물만 살아남아 기괴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보는 이로 하여금 세상에 혼자 내버려진 듯한 공포, 또 초현실적인 악몽에 갇힌 듯한 불안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작가는 “시간의 흐름을 포착하려 했다”며 “도시 문명에 대한 회의 때문에 사람을 지워나갔다”고 말한다.

박씨는 이미 도쿄와 시드니의 가로수도 1만컷씩 촬영해 놓았다. ‘1만컷 도시 연작’을 죽 이어나갈 것이라는 그는 요즘 아버지를 사진에 담고 있다.

“1년에 너댓 번 광주 사시는 아버지를 찾아뵐 때마다 정면 클로즈업 사진을 열 롤씩 촬영하고 있다”고 말하는 작가는 “1만컷을 완성하려면 앞으로 수년이 더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버지 얼굴 1만컷이 모인 작품 앞에서 관객이 ‘박홍천의 아버지’가 아니라 각자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렸으면 합니다.” 작가는 ‘아버지가 뭐라시더냐’고 묻자 “늘 필름값을 제일 걱정하신다”고 말했다.
전시기간은 25일~5월 9일. (02) 732-4677

 

- 조선일보, 2003. 4. 23.